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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진화를 실험한 섬 갈라파고스 제도

by 리치오라 2026. 2. 23.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곳인데 막상 아이에게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오늘은 세계 문화유산이자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우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지구가 진화를 실험한 섬 갈라파고스 제도
지구가 진화를 실험한 섬 갈라파고스 제도

 

1. 불의 섬에서 태어난 세계, 화산과 해류가 빚어낸 원초적 풍경

갈라파고스 제도는 에콰도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군도다. 이 고립성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섬들은 갈라파고스 해저판 위에 형성되었으며, 태평양 바닥에서 무려 3,000m나 솟아오른 화산 활동의 결과물이다. 군도의 서쪽에서는 지금도 활발한 화산과 지진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섬은 완성된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땅이다.

대표적인 섬으로는 이사벨라, 산타크루스, 페르난디나, 산티아고, 산크리스토발 등이 있다. 이사벨라 섬은 특히 여러 개의 순상화산이 겹쳐 형성된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순상화산은 경사가 완만하고 넓게 퍼진 형태를 띠는데, 이는 용암이 점성이 낮아 멀리까지 흘러갔기 때문이다. 무너진 분화구와 칼데라, 부석과 화산재가 만들어낸 지형은 마치 다른 행성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해안선 역시 평범하지 않다. 단층작용과 해양 침식이 반복되면서 깎아지른 절벽이 형성되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검은 해변과 산호·조개껍데기가 쌓인 밝은 해변이 대비를 이룬다. 크레이터 호수, 분기공, 용암동굴, 유황 지대 등은 이곳이 여전히 지구 내부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세 개의 주요 해류가 만난다. 차가운 페루 해류, 따뜻한 파나마 해류, 그리고 심해에서 영양염을 끌어올리는 용승류가 교차하며 독특한 해양 환경을 만든다. 이 해류의 상호작용 덕분에 수온과 영양 성분이 크게 달라지고, 이는 곧 폭발적인 해양 생물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갈라파고스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바다와 땅이 함께 빚어낸 거대한 생태 실험실인 셈이다.

 

2. 고립이 만든 기적, 거북과 이구아나, 그리고 다윈의 통찰

이 섬이 ‘진화의 전시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고립과 다양성에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서로 다른 고도, 면적, 방향을 가진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은 종(種)들이 섬마다 다르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대표적인 존재가 갈라파고스땅거북이다. 이 거대한 거북은 섬에 따라 등껍질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어떤 섬의 개체는 목을 길게 뻗을 수 있도록 안장형 등껍질을 갖고 있고, 다른 섬의 개체는 둥근 돔형을 지닌다. 먹이 환경의 차이가 신체 구조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육지이구아나와 바다이구아나 역시 이곳의 상징이다. 특히 바다이구아나는 바다에서 해조류를 먹는 세계 유일의 해양 이구아나다.

조류 또한 놀랍다. 갈라파고스에는 약 57종의 조류가 서식하며, 그중 거의 절반이 고유종이다. 특히 다윈핀치라 불리는 13종의 핀치류는 부리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씨앗을 먹는 종, 곤충을 잡는 종, 선인장 열매를 먹는 종 등 먹이 습성에 따라 부리가 달라졌다. 이 작은 차이는 거대한 통찰을 낳았다.

1835년, 젊은 박물학자였던 찰스 다윈이 이 섬을 방문했다. 그는 처음에는 핀치류가 서로 다른 종이라는 사실조차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표본을 분석하면서 종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것이 훗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으로 이어진다. 갈라파고스는 단지 희귀 동물이 많은 섬이 아니라,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꾼 장소였다.

 

3. 바다와 안개의 경계 , 극적인 기후와 생태의 층위

갈라파고스의 또 다른 매력은 기후와 식생의 극적인 대비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해안 저지대에는 맹그로브 늪과 염수 석호가 자리하고 있으며, 바위와 모래가 섞인 해안 식생이 나타난다. 그러나 내륙으로 들어서면 건조대가 펼쳐진다. 이 건조대는 군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후대다.

그 위에는 습윤대가 형성된다. 특히 큰 섬의 고지대에서는 ‘가루아’라 불리는 짙은 안개가 숲을 덮는다. 이 안개는 밤에 형성되어 낮 동안 숲으로 스며들며 수분을 공급한다. 덕분에 건기에도 식생이 유지된다. 정상부에는 양치식물과 벼과·사초과 식물이 자라는 독특한 지대가 형성되고, 일시적으로 생긴 웅덩이가 생태계를 유지한다.

해양 생태계 역시 압도적이다. 상어와 가오리, 여러 고래류, 바다거북이 이 바다를 오간다. 갈라파고스펭귄은 적도 인근에서 서식하는 유일한 펭귄 종으로, 차가운 해류 덕분에 생존한다. 날지 못하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 용암갈매기, 갈라파고스해오라기 등은 섬의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고유종이다.

이처럼 갈라파고스는 단일한 풍경이 아니라 층위가 겹겹이 쌓인 생태의 세계다. 불의 섬 위에 안개 숲이 형성되고, 차가운 해류 위에 열대의 생명이 공존한다. 극단과 극단이 만나는 경계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갈라파고스는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장소
갈라파고스는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장소

 

갈라파고스 제도는 단순히 희귀 동물을 볼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이곳은 지구가 스스로를 실험해온 무대이며,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장소다. 화산과 해류, 고립과 적응, 생존과 변화가 한데 얽혀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 만약 우리가 진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이 섬을 떠올려야 한다. 갈라파고스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지구의 일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