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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경주역사지구

by 리치오라 2026. 2. 19.

국내여행을 많이 다녀본 편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유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도시가 있다. 바로 경주 역사 지구가 자리한 경주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높은 건물을 찾기 어려워서인지, 그곳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평온하고 차분해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유적과 명소들은 이곳 전체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처럼 느껴지게 한다. 역사에 깊은 관심이 없더라도,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고 경건해지는 기분이 드는 도시라 마음에 든다.

 

천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경주역사지구
천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경주역사지구

 

1. 신라 천 년의 수도, 살아 있는 역사

경주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가 아니다. 대신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이다. 낮은 하늘 아래 고분이 이어지고, 오래된 돌과 흙이 시간을 품은 채 자리하고 있는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든다. 그래서 경주는 단순히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삶의 속도를 내려놓게 하는 공간이다.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 자리를 걷다 보면, 우리는 과거를 배우는 동시에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경주는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도시이다.

경주는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된 이후 약 1,000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한 도시이다. 한 나라의 정치·문화·종교 중심지가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역사적 밀도는 남다르다. 특히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경주는 동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국제적 도시로 성장하였다.

당시 신라는 중국 당나라와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는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왕권은 종교적 권위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 결과 사찰, 탑, 불상, 궁궐, 산성, 왕릉 등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유적들은 단순한 건축 잔해가 아니라, 신라인의 세계관과 미적 감각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경주 역사 지구는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가 그것이다. 각 지구는 서로 다른 성격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며,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궁궐지나 사찰 터는 건물이 사라졌어도 배치와 터를 그대로 유지하며, 당시 공간 구조를 상상하게 한다.

이곳은 단순히 ‘옛 유적이 많은 도시’가 아니다. 왕의 무덤이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천 년 전의 천문대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산 위에는 불상이 바위에 새겨진 채 세월을 견디고 있다. 경주는 과거가 현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도시이다.

 

2. 다섯 개 지구로 읽는 신라의 세계

경주 역사 지구의 매력은 각각의 공간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있다.

먼저 남산지구는 ‘야외 불교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불교 유적이 분포한 곳이다. 남산은 원래 토착 신앙의 성산이었으나, 불교가 전래되면서 신성한 수행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산 곳곳에는 마애불과 탑, 절터가 남아 있어 당시 신앙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자연과 종교가 어우러진 풍경은 신라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월성지구는 왕권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신라 왕궁이 있었던 월성과 더불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중 하나로 알려진 첨성대가 자리한다. 첨성대는 단순한 관측 시설을 넘어,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려 했던 고대인의 과학적 사고를 상징한다. 또한 안압지(동궁과 월지)는 왕실의 연회와 외교 행사가 열리던 공간으로, 인공 연못과 건축이 어우러진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대릉원지구는 왕과 귀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고분 공원이다. 둥글게 솟은 봉분들은 마치 잔잔한 언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화려한 금관과 장신구, 유리 공예품 등 찬란한 문화가 잠들어 있다. 특히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신라 미술의 상징적 유물로 꼽힌다.

황룡사지구는 한때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찰이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그 규모와 배치를 통해 당시 국가 불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성지구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시설로,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수도를 지키려 했던 의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다섯 지구는 종교, 정치, 과학, 예술, 군사라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신라 사회의 입체적인 모습을 전한다.

 

3. 천 년을 넘어 이어지는 보존의 노력

긴 세월 동안 경주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신라의 멸망 이후 고려와 조선, 그리고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건축물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도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2000년, 경주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신라 문화의 독창성과 보편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이다. 현재 이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고 있으며, 유산 주변 500m 이내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모든 건설 행위는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하며, 발굴 조사 또한 철저히 이루어진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정비 사업을 통해 유적을 보존하고 있다. 전문가의 정밀 조사와 보수 작업은 물론, 유적 사이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한 도시 계획도 병행된다. 이는 단순히 유적을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 역사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경주가 특별한 이유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적은 여전히 시민의 일상과 함께 존재하며, 계절마다 다른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봄 벚꽃 아래의 고분, 여름의 짙은 녹음 속 남산, 가을빛에 물든 월성은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경주는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도시
경주는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도시

 

경주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가 아니다. 대신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이다. 낮은 하늘 아래 고분이 이어지고, 오래된 돌과 흙이 시간을 품은 채 자리하고 있는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든다. 그래서 경주는 단순히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삶의 속도를 내려놓게 하는 공간이다.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 자리를 걷다 보면, 우리는 과거를 배우는 동시에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경주는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