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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만난 세계 문화유산 수원 화성

by 리치오라 2026. 2. 16.

설 연휴를 맞아 아이들과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지난번 스타필드 수원에서 보았던 열기구가 떠올랐다. 아이와 다음번에는 꼭 타보자고 약속했기에,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맑은 하늘을 즐길 겸 아침부터 ‘플라잉수원’을 찾았다. 플라잉수원은 화성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열기구에 오르자 수원 시내와 수원 화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은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하늘 위에서 만난 세계 문화유산 수원 화성
하늘 위에서 만난 세계 문화유산 수원 화성

 

1. 효심에서 시작된 도시, 정치 개혁의 심장부

화성의 출발점에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결단이 있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정조는 즉위 후 부친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이장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상징적 공간으로 수원을 선택한 것이다.

정조는 수원을 지방 행정 도시가 아닌 이상 도시로 구상하였다. 한양 중심의 정치 구조에서 벗어나 당쟁을 완화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개혁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담긴 공간이 바로 화성이다. 성곽 안에는 행궁과 관청, 상업 공간이 함께 배치되어 군사·행정·경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기존의 산성과 읍성이 분리되어 있던 구조와 달리, 화성은 두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성곽 도시이다. 평지와 산지를 아우르며 실제 주민이 거주하고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생활 공간을 방어 체계 안에 포함시킨 구조이다. 이는 조선 후기 도시 개념의 확장이자 정치적 실험의 결과이다.

따라서 화성은 효심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정치 개혁의 상징이다. 수도 남쪽의 전략 거점에 세워진 이 성곽은 국방 요새이자 신도시 프로젝트이며, 정조가 꿈꾼 새로운 조선의 무대이다.

 

2. 동서양 과학이 결합된 18세기 첨단 건축

화성은 전통적인 축성 기법을 따르면서도 당대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혁신적 건축물이다. 설계에는 실학자 정약용이 참여하였다. 그는 동서양의 군사·건축 기술서를 참고하여 체계적인 지침을 마련하였고, 그 내용은 『화성성역의궤』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중기와 도르래 장치이다. 대형 석재를 효율적으로 들어 올리고 운반하기 위해 고안된 이 기계 장치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인력 소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조선 후기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치이다.

또한 화성은 석재와 벽돌을 혼합하여 축성한 독창적 구조를 지닌다. 규격화된 벽돌 사용은 구조적 안정성과 시공 효율을 높였으며 미적 완성도 또한 강화하였다. 치성, 포루, 공심돈, 암문 등 다양한 방어 시설은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사각지대를 최소화하였다.

네 개의 대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상징과 기능을 동시에 갖춘 건축물이다. 반달형 보루가 덧붙은 구조는 방어력을 강화하면서도 위엄을 드러낸다. 성벽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팔달산 자락을 감싼다. 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동양적 미감의 구현이다.

화성은 전통과 혁신, 과학과 자연이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다. 18세기 조선에서 이처럼 체계적인 계획과 기록, 기술이 결합된 대규모 건설 사업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3. 기록으로 복원된 성곽, 200년을 이어온 힘

화성의 또 다른 특징은 치밀한 기록이다. 1801년 간행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설계 도면, 인력 동원 현황, 재료 출처, 예산 집행 내역, 사용 기계와 공법 등이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준공 보고서가 아니라 국가 프로젝트의 종합 기록 문서이다.

이 기록 덕분에 화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훼손된 이후에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다. 파손된 시설은 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 재료와 기법을 활용해 복원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화성은 높은 진정성과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화성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체계적인 보존 관리 체계 아래 놓여 있다. 주변 지역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 행위가 엄격히 통제된다. 24시간 감시 체계와 정기적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며, 전문 문화재수리기술자가 유지·보수를 담당한다.

북수문을 따라 흐르는 수원천과 성문을 잇는 도시 가로망은 200년 전 구조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이는 과거의 도시 계획이 현재의 생활 공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성과 걸으며 마주할 화성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열기구에서 내려와 다시 성곽을 올려다보니, 조금 전까지 한눈에 내려다보던 화성이 또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오래된 성곽이 아니라, 한 왕의 마음과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다음에는 성 위를 걸어보자”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성과 직접 걸으며 마주할 화성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다음 약속도 자연스럽게 화성 안에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