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시 펼치게 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아우슈비츠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웠던 그 책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아우슈비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1. 최종 해결의 현장, 아우슈비츠의 역사적 배경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1940년, 나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지역에 처음 세워졌다. 처음에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능은 완전히 바뀌었다. 1942년부터는 히틀러가 추진한 이른바 ‘최종 해결(Final Solution)’ 정책의 핵심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는 계획이었다.
아우슈비츠는 점차 거대한 수용소 단지로 확장되었고, 세 개의 주요 구역으로 나뉘었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는 행정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본부 역할을 했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장소였다. 제3수용소는 강제노동을 위한 산업 시설과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비르케나우에는 가스실과 소각장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도착 즉시 노동 가능 여부에 따라 ‘선별’이 이루어졌다. 노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노인과 어린이, 많은 여성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그중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가족, 꿈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는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체계적이고 산업적으로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증오가 국가 권력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다.
2. 남겨진 구조물들이 말해주는 것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그 참혹한 흔적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 감시탑, 붉은 벽돌 막사, 나무로 지어진 수용동, 가스실과 소각장의 폐허까지. 이 모든 구조물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을 증언하는 ‘증거’다.
특히 비르케나우로 이어지는 철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이 철로를 따라 들어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도착한 당일에 목숨을 잃었다. 철로는 곧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또한 박물관에는 희생자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어린아이의 신발, 안경, 여행 가방, 머리카락, 의복 등은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던 개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행 가방에는 아직도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이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전쟁 말기, 나치는 자신들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가스실과 소각장을 파괴하고 문서를 소각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적 증거가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은 인간이 저지른 범죄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며, 역사 왜곡과 부정을 막는 물리적 증언이기 때문이다.
3. 아우슈비츠가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질문
아우슈비츠는 과거의 비극이지만, 단지 과거에 머무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곳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을까? 증오는 어떻게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나치의 범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편견과 차별, 왜곡된 정보와 선동,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서서히 사회를 잠식했다. 법과 제도, 언론과 교육이 특정 집단을 ‘열등하다’고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존엄성은 조금씩 무너졌다. 결국 국가 권력과 체계적인 행정, 기술이 결합하면서 대량 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아우슈비츠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도우려 했던 수감자들, 기록을 남기려 했던 이들, 저항을 시도했던 사람들—그들의 존재는 인간 정신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역사적 장소’가 아니라, 경고의 공간이다. 인종차별, 혐오, 극단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때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를 떠올려야 한다. 기억은 고통스럽지만, 망각은 더 위험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무거운 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인류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장소다. 이곳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극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기억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세계유산으로 보존된 이 공간은 과거의 상처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경고와 교훈을 전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를 지키는 일임을 아우슈비츠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