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는 나지만, 길도, 계단도, 안전장치도 없던 시절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이런 위대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들에게 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신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메테오라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1. 6천만 년의 시간 위에 세워진 기도의 공간
메테오라를 이해하려면 먼저 ‘바위’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곳의 봉우리들은 단순한 절벽이 아니다. 약 6천만 년 전, 제3기 동안 강이 흘러내리며 형성한 퇴적층이 지진 활동으로 융기하고 단층과 균열을 거치며 지금의 기묘한 형태로 변형된 결과다. 사암과 역암이 침식되며 남은 거대한 잔괴(residual mass)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돌기둥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하늘의 기둥(columns of the sky)’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테살리아 평원 위로 400m 이상 우뚝 솟은 이 암봉들은 원래 삼각주였던 지형이 지각 변동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화학적 분석 결과 이 바위들은 강에서 원추형으로 형성된 뒤 지진으로 변형된 것으로 밝혀졌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조형물인 셈이다. 인간은 이곳을 정복하지 않았다. 대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위에 ‘기도의 집’을 올렸다.
11세기, 은둔자들은 이 바위 틈과 동굴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접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절벽 위는 오히려 그들에게 이상적인 수행처였다. 세속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고립된 공간, 오직 하늘과 맞닿은 듯한 높이. 메테오라는 자연 지형 자체가 하나의 수도 규율이 되는 곳이었다.
이후 12세기 말에는 ‘파나기아 두피아니’라는 공주수도단지(skete)가 형성되며 공동체적 수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작은 교회와 수행 공간이 들어서고, 바위 위의 생활은 점점 체계화되었다. 메테오라는 단순한 자연 절경이 아니라, 인간이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환경을 ‘건축적으로 변형’한 가장 독특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유산 등재 기준 (ⅰ), (ⅱ), (ⅳ), (ⅴ), (ⅶ)을 충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밧줄과 그물로 오르던 수도원, 24개의 신앙 공동체
14세기, 테살리아 지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외세의 침략과 권력 다툼이 이어지던 시기, 수도사들은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정상에 조직적으로 수도원을 세웠다. 방어와 은둔, 두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15세기 말에는 무려 24개의 수도원이 절벽 위에 자리 잡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는 이 수도원들은 원래 길이 없었다. 물자와 사람은 밧줄, 사다리, 그리고 그물망을 이용해 수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발람(Varlaam) 수도원이 위치한 절벽에서는 무려 373m를 그물에 의지해 오르내렸다. 순례자들은 공중에 매달린 채 위로 끌려 올라갔다. 그 장면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속에서 신성으로 올라가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했다. 위험을 감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그곳은 더욱 신성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전통적 방식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메테오라는 인간의 결단과 신앙이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도원들은 17세기까지 번성했으며, 16세기 프레스코화는 후기 비잔틴 회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적 유산이다. 현재는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아기아 트리아스, 발람, 메테오론 수도원 네 곳에서만 종교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건축물들만으로도 당시 수도 공동체의 규모와 조직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메테오라는 단순히 절벽 위에 세운 건물이 아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며 이상적인 은둔자 생활을 실현한 역사적 증거다.
3. 자연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공존이 남긴 풍경
메테오라는 종교 유산이면서 동시에 자연 유산적 가치도 함께 지닌다. 바위 절벽 아래에는 버즘나무(Platanus orientalis) 숲이 펼쳐지고, 코니스코스 마을 인근에서는 고유종 수레국화 두 종이 서식한다. 1979년 조성된 트리칼라 휴양림에는 알레포소나무와 사이프러스가 식재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잠재 식생은 초지중해형 식생으로 참나무와 새우나무, 고도 700m 이상의 유럽너도밤나무 숲이 극상을 이룬다.
이곳은 인간이 자연을 밀어낸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 위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긴 사례에 가깝다. 수도원들은 거대한 바위를 깎아내리기보다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얹혀 있다. 절벽의 형태를 존중한 채 건축되었기에, 멀리서 보면 마치 바위가 스스로 수도원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테오라’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곳에 서면 땅과 하늘 사이에 매달린 기분이 든다. 아래에는 평원이 펼쳐지고, 위에는 끝없는 하늘이 열린다. 그 사이에 인간이 만든 작은 건축물이 존재한다. 이 대비가 바로 메테오라가 주는 감동의 본질이다.
메테오라는 수행과 명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인간 문명이 자연을 대하는 한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극한의 지형에서도 파괴가 아닌 적응을 선택한 사례. 이것이 바로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유산’으로 불리는 이유다.

메테오라의 절벽을 올려다보면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높은 곳을 오를 수 있을까. 신앙이었을 수도, 두려움이었을 수도, 혹은 세상으로부터의 거리였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메테오라는 인간이 하늘에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 선택한 자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6천만 년의 시간 위에, 지금도 조용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