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때 나를 보러 놀러온 동생과 꼭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프라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식라고 불리우는 이곳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 신시가지를 넘나들며 여행하던 그때의 추억을 돌아보며 여행 이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라하 역사 지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1. 고딕에서 모더니즘까지, 한 도시 안에 담긴 건축의 역사
프라하 역사 지구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시대의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곳은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20세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유럽 건축사의 주요 흐름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도시이다. 마치 건축 교과서를 도시 전체로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이다.
프라하의 상징인 성 비투스 성당은 전성기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다리는 14세기 카를 4세 시대에 건설된 고딕 양식의 석조 다리로, 도시의 상징이자 정치·문화적 연결 통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라하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더하게 된다. 발드체인 궁전과 같은 건축물은 30년 전쟁 이후 가톨릭 세력이 강화되던 시기의 예술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이후 19세기에는 도시 계획에 따라 신도시 노베메스토가 확장되었고, 산업화 시대의 건축물과 근대적 도시 구조가 더해졌다.
프라하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대규모 철거와 전면 재개발을 거의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도시의 구조와 공간 구성, 거리의 흐름이 중세부터 이어진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연속성과 완전성이다. 도시의 성장 과정이 층층이 남아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2. 카를 4세와 새로운 예루살렘의 꿈
프라하의 황금기는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 시대이다. 그는 프라하를 지역 수도가 아니라 유럽의 중심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그의 비전은 종교적 상징성과 정치적 권위를 동시에 담은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1348년 카를 4세는 카를 대학을 설립한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이며, 중부 유럽 지성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학은 종교개혁의 사상적 토양이 되었고, 얀 후스와 같은 인물을 배출하며 유럽 사상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도시 구조 역시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기존 구시가지 스타레메스토에 더해 신도시 노베메스토가 계획적으로 조성되었다. 넓은 광장과 직선 도로, 방어벽 체계를 갖춘 이 신도시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도시 확장이었다. 카를 다리 또한 이 시기의 상징적 건축물로, 왕권과 도시의 번영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존재이다.
카를 4세 이후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문화·정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모차르트, 카프카, 드보르자크, 케플러, 아인슈타인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이 도시와 인연을 맺었다. 프라하는 건축의 도시일 뿐 아니라 사상과 예술, 과학이 교차한 지적 중심지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유산 등재 기준 가운데 역사적 인물과의 연관성이 인정된 이유이다.
3. 세 개의 도시가 만든 하나의 세계유산
프라하 역사 지구는 단일 공간이 아니라 세 개의 역사적 구역이 모여 형성된 구조이다. 구시가지 스타레메스토, 소시가지 말라스트라나, 신도시 노베메스토가 그것이다. 이 세 지역은 서로 다른 시기에 형성되었지만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는 9세기 말 블타바 강 왼편 언덕의 요새화된 정착지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프라하 성이 자리한 곳이다. 이후 강 건너편으로 확장되며 두 번째 요새가 세워졌고, 점차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성장하였다. 10세기에는 주교 관할지가 되면서 종교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말라스트라나는 프라하 성 아래 자리한 지역으로, 바로크 양식의 궁전과 교회가 밀집해 있다. 귀족과 성직자들의 거주지로 발전하면서 장엄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반면 스타레메스토는 상업과 시민 생활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고딕식 아케이드가 있는 주택과 광장이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노베메스토는 14세기 계획적으로 조성된 신도시로, 중세 도시 발전의 모델로 평가된다. 19세기 이후 일부 철거가 있었지만, 새로운 건축 양식이 더해지면서 도시의 역사적 층위는 오히려 더욱 풍부해졌다. 유네스코는 개별 건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구조와 경관을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프라하는 건물 하나가 아닌 ‘도시 전체’가 세계유산인 드문 사례이다.

프라하는 과거를 박제한 도시가 아니다. 전쟁과 화재, 쇠퇴와 부흥을 모두 겪으면서도 도시의 구조와 기억을 지켜낸 공간이다. 그래서 프라하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유럽 문명과 건축, 사상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 도시이다. 블타바 강 위로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프라하 성의 실루엣을 바라보는 순간, 이 도시가 왜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