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절벽 위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다시 돌이 되는 곳.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사진으로 먼저 알려졌지만, 실제 이야기는 훨씬 깊고 오래되었다. 이곳은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 위에 인간이 도시를 세운 드문 장소다. 온천수의 흔적이 만든 계단형 풍경과 그 위에 남아 있는 고대 도시의 유적은, 자연과 문명이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1. 목화의 성이 만들어낸 자연의 건축
파묵칼레라는 이름은 튀르키예어로 ‘목화의 성’을 뜻한다. 멀리서 보면 정말로 눈처럼 하얀 절벽이 평원 위에 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풍경은 단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약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단층을 따라 솟아오르고, 그 물 속에 녹아 있던 칼슘이 공기와 만나 침전되며 수천 년에 걸쳐 지금의 형태를 만들었다. 물이 흐르고, 돌이 쌓이고, 다시 물이 흐르는 반복 속에서 계단 형태의 분지와 석화 폭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곳의 풍경이 특별한 이유는 ‘움직이는 자연’이라는 점에 있다. 파묵칼레는 정적인 지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 중인 공간이다.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흰색의 농도는 달라지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표면은 눈부시게 반짝이거나 부드럽게 빛난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자연이 만들어낸 조형물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건축처럼 느껴진다.
고대인들 역시 이 변화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이 물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을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피부 질환과 관절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고, 사람들은 먼 지역에서까지 이 물을 찾아왔다. 이때부터 파묵칼레는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치유의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파묵칼레의 자연은 인간에게 감상의 대상이자 삶의 일부였다. 눈으로 보기 위한 풍경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공간. 그래서 이 하얀 절벽은 단순한 자연유산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시간이 겹쳐진 드문 무대가 되었다.
2. 온천 위에 세워진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탄생
이 특별한 자연 위에 도시를 세운 이들이 바로 헬레니즘 시대의 왕들이었다. 기원전 2세기 말, 페르가몬을 다스리던 아탈리드 왕조는 파묵칼레의 온천수를 중심으로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처음부터 ‘치유의 도시’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목욕탕, 온천 시설, 신전, 극장 등은 모두 물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기원전 129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 히에라폴리스는 더욱 번성했다. 로마인들은 온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히에라폴리스는 아나톨리아 지역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로 성장했다. 이곳에는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함께 살았고,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공존했다. 그래서 히에라폴리스는 단일 문화의 도시가 아니라, 여러 문명이 섞인 ‘국제 도시’에 가까웠다.
도시 곳곳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거대한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종교 의식과 제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세베루스 시대에 만들어진 프리즈에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의식 장면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대형 공동 묘지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인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치유를 위해 이곳에 왔고,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온천수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물은 몸을 씻는 데 쓰였고, 치료에 활용되었으며, 양모를 세척하고 염색하는 산업에도 사용되었다. 물을 따라 도시가 성장했고, 도시는 다시 자연의 흐름 속에 놓였다. 이처럼 히에라폴리스는 자연 위에 세워진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맞춰 형성된 도시였다.
3. 자연과 신앙이 만나는 세계유산의 가치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자연과 인간, 신앙과 과학이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진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온천수의 치유력은 단순한 의학적 경험을 넘어 종교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유해한 증기가 나오는 단층 위에 아폴로 신전을 세운 것은, 자연 현상을 신의 영역으로 해석했던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후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히에라폴리스는 또 다른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사도 빌립보는 이곳에서 순교했고, 그의 흔적을 기리기 위해 대성당과 세례당, 교회들이 세워졌다. 특히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 성당은 팔각형 평면 구조를 지닌 독창적인 건축물로, 초기 기독교 건축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건축물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신앙과 공간 구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의 가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역의 자연 지형은 오늘날까지도 문화 경관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파묵칼레 국립공원에 펼쳐진 단구와 폭포, 주변 산맥과 평원, 그리고 그 사이에 남아 있는 도시의 흔적은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가 다시 고민하고 있는 ‘지속 가능성’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그 질문을 눈부신 하얀 풍경 속에 조용히 담아두고 있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자연이 먼저 길을 만들고, 인간이 그 위에 조심스럽게 발을 얹은 장소다. 물이 돌이 되고, 돌 위에 도시가 세워지고, 그 도시가 다시 신앙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겹겹의 시간 때문이다. 하얀 절벽 위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온 긴 대화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