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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기 많이 산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순간

by 리치오라 2026. 1. 19.

집을 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종종 이렇게 답한다. “다들 산다길래”, “요즘 여기가 뜬다더라”, “주변에서 다 괜찮다고 해서.” 그 순간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에 기대고 있으니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집에 익숙해질수록, 이상한 감정이 고개를 든다. 남들과 같은 이유로 샀던 집을, 결국 나만의 이유로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글은 그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여기 많이 산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순간
요즘 여기 많이 산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순간

 

1. 다들 사니까 말이 가장 먼저 지워버리는 것 

“다들 사니까 괜찮겠지”라는 말은 부동산에서 가장 강력한 마취제다. 이 말은 판단을 단순하게 만들고, 책임을 분산시킨다. 나 혼자 틀릴 가능성보다, 다수가 함께 틀릴 가능성이 더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보에게 이 논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수의 선택은 곧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문장의 문제는, ‘왜 나는 이 집을 사는가’라는 질문을 통째로 생략해버린다는 점이다. 다수가 선택한 이유와 내가 이 집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같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투자 관점에서, 누군가는 학군 때문에, 누군가는 전세를 끼고 들어가기 위해 선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초보는 이 복잡한 이유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괜찮은 선택’이라고 받아들인다.

결정의 순간에는 이 단순화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집에 실제로 살기 시작하면, 다수는 사라지고 ‘나 혼자’만 남는다. 출퇴근이 불편할 때, 동네가 낯설 때, 생활비가 예상보다 더 들 때, 이 불편을 함께 감당해줄 ‘다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선택의 책임은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

이때 후회는 집 자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 집이 나쁘다”기보다, “나는 왜 이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이 “다들 사니까”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감정은 급격히 불안해진다. 이유가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이 선택을 정당화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다들 사니까’라는 말은 선택을 쉽게 만들어주는 대신, 선택을 견디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 집은 사는 순간보다,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 시간을 버텨주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나만의 이유다.

 

2. 타인의 논리가 내 감정을 대신 결정할 때 생기는 균열 

집을 선택할 때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적인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전문가의 말, 지인의 경험,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빌려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리는 깔끔하고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이 논리가 내 감정을 대신 결정해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기는 무조건 오른다”는 말은 집에 대한 불안을 눌러준다. “살기엔 조금 불편해도, 나중에 팔면 되니까”라는 논리는 현재의 불편을 미래의 보상으로 덮는다. 이때 감정은 잠시 침묵한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뒤로 밀릴 뿐이다.

시간이 지나 생활이 시작되면, 밀려났던 감정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출근길이 힘들 때, 동네에 정이 붙지 않을 때,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때. 이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타인의 논리가 말하고 있다. “그래도 가격은 괜찮잖아”, “지금 사는 게 맞았어.” 하지만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이 균열이 반복되면, 사람은 집을 평가하는 기준을 잃는다. 좋다고 해야 할지, 후회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가장 괴로운 이유는, 집에 문제가 있는지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감정은 스스로를 공격한다. “내가 예민한가?”, “왜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이럴까?”

타인의 논리는 결정 순간에는 강력하지만, 생활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집은 매일 마주하는 공간이고, 감정은 매일 쌓인다. 이 간극을 설명해줄 언어가 없을 때, 후회는 더 깊어진다. 그래서 집을 고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논리다.

 

타인의 논리가 내 감정을 대신 결정할 때 생기는 균열
타인의 논리가 내 감정을 대신 결정할 때 생기는 균열

 

3. 같은 집에서도 후회의 방향이 달라지는 이유

흥미로운 점은, 같은 집에 살아도 후회의 방향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비싸게 샀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 동네가 나랑 안 맞는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선택 당시의 이유가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기 이유로 선택한 사람은 불편이 있어도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예상했던 부분이야”, “이 정도는 감당하기로 했었지”라는 말이 가능하다. 반면 타인의 이유로 선택한 사람은 불편 앞에서 설명을 잃는다. 불편은 생기는데, 그걸 견뎌야 할 이유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불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택 전체를 부정하고 싶어지는 감정으로 번진다. 집을 바꾸고 싶은 마음, 이사 생각, 끝없는 비교가 시작된다. 이때 사람은 다시 타인의 선택을 바라본다. “저 사람은 잘 산 것 같은데”, “다음엔 저렇게 사야지.” 그리고 이 반복은 또 다른 후회의 씨앗이 된다.

부동산에서 말하는 ‘실패’는 꼭 가격 하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흔한 실패는, 자기 삶과 어긋난 선택을 계속 합리화해야 하는 상태다. 집은 매일 마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어긋남은 생각보다 빠르게 삶의 질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를, 3년 뒤에도 나는 나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격이나 분위기는 변할 수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 남는다. 그 답이 자기 것이어야, 후회도 관리할 수 있다.